잘 자!
- 편집팀
- 2019년 10월 9일
- 6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0년 9월 29일
나는 매일 밤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하는 것이 있다. 내가 지금까지 여기에 투자한 시간은 자그마치 43,800시간, 나는 내 인생의 3분에 1을 여기에 투자했고 죽을 때까지 그럴 예정이다. 도대체 “이것”이 뭐길래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사실, “이것”은 우리가 모두 하며, 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매일 밤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잠을 잔다.
잠은 굉장히 흥미로운 존재다. 우리 인생의 3분에 1을 차지하는 행위인 동시에 우리가 가장 아무것도 하지 않는, 어떻게 보면 가장 무의미하게 보내는 시간이다. 또한 잠은 대부분의 동물의 본능이다.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어류, 초파리, 해파리까지 모두 잠과 비슷한 행동을 보인다. 이런 면에서 자는 것은 먹는 것과 버금가는 본능적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먹는 것은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라는 명확한 과학적 이유가 규명된 데에 비하여 수면의 이유는 과학적으로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왜 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과연 잠이란 무엇일까?

이 세상에 잠이 없다면 ?!?!
먼저, 너무 진지한 고민은 재미가 없으니 재미난 상상부터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런 상상을 해보자: “이 세상은 잠이 없는 세상이며 수면욕을 느끼지 못하며 자는 것 자체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세상이다.” 일단은 사람이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1.5배는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밤이라는 시간에 대한 개념도 많이 바뀔 것 같다. 이 세상 사람들에게 밤은 일반적으로 자는 시간이고 낮보다 정적이고 개인적인 시간이다. 하지만 밤에 잠을 자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굳이 이 시간을 개인적이고 정적으로 보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지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밤에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낮처럼 많아질 것이고 그러면 밤은 어두운 것 빼고 낮과 비슷해질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는 밤에 내가 하고 싶은 활동을 무엇이든 할 수 있으므로 일과 여가의 균형이 아주 잘 잡힌 사회가 만들어지리라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활동량이 늘어나고, 밤이 낮처럼 변하고, 잠이라는 휴식 시간이 없어지면 굉장히 절망적인 사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활동량과 휴식 시간이 줄면 그만큼 사람에게 요구하는 양이 많아질 것 같아. 예를 들어, 나의 활동량이 늘어났기 때문에 선생님께서 숙제를 더 내주신다면 나는 결국 밤에 추가적인 숙제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학교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야근이 당연한 것이 되어서 회사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더 많아질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사람들은 회사에서 1.5배의 스트레스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식의 사회가 만들어진다면 결국 잠이 없어지면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잠보다 못한 것으로 채우는 상황에 놓일 것 같다. 한번 잠이 없는 세상에 대해 상상을 하고 나니 잠이 생각보다 좋은 녀석인 것 같다.

우리 생활에서 잠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이제 본격적으로 잠이란 무엇인지 알아볼 것이다. 잠의 의미를 생활적인 측면과 과학적인 측면으로 나눠서 분석해보려고 한다. 먼저, 생활적인 측면에서 잠의 의미를 파악해 보겠다. 잠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을 제공한다. 숫자로 치면 0이란 비슷한 기능을 하는 것 같다. 0은 없는 수지만 없는 것이 있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에 의미가 큰 것이다. 마찬 가지로, 잠을 잘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주어지기에 더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잠은 하루를 구분 짓는 역할을 한다. 오늘과 내일 사이에 가장 명확한 경계가 있다면 그것은 잠이라고 생각한다. 천체의 운동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24시간제의 0시 0분을 하루의 경계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면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23시 59분과 0시 0분 사이의 차이점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잠을 자고 일어나면 하루가 지났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가 있으며 잠을 기준으로 우리의 행동은 불연속적으로 변화한다. 잠은 이러한 불연속성을 가졌기에 가장 “명확한” 하루의 경계가 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잠은 우리의 피로를 해결한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너무 많은 활동을 해서 피곤하거나 몸이 병들거나 하면 잠을 잔다. 그리고 잠을 통해 그런 문제들은 대개 해결된다. 반대로 잠을 자지 않으면 우리는 극심한 피로를 느끼고 심하면 수면 부족으로 죽을 수도 있다.
잠을 과학적으로 정의하는 방법
이제 잠을 과학적으로 들여다볼 것이다. 먼저 생물학적으로 잠이 가지는 독특한 특징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휴식이나 겨울잠, 기절 등과 구분되는 잠의 독특한 특징을 발견해야 잠을 다른 유사한 개념들과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잠을 과학적으로 정의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방법은 전기생리학적으로 잠을 정의하는 것이다. 전기생리학적으로 뇌파 활동의 변화를 통해 잠이라는 상태를 구별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잠의 3단계:
깨어 있는 기간
NREM(Non-rapid-eye movement)
REM(Rapid Eye Movement) 는 전기생리학적인 방법으로 알아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전기생리학적인 방법의 한계점은 작은 동물들의 신호를 감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동물의 행동을 바탕으로 잠을 정의한다. 잠을 정의하는 5가지 행동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장기간의 행동을 하지 않는다.
자극에 의해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종별로 정해진 자세를 취한다.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 역치가 증가한다.
수면 부족 이후에는 더 많은 잠을 잔다.
추가적인 설명: 두 번째 특징은 혼수상태나 마비 상태와 잠을 구별한다. 그리고 네 번에서 역치는 반응이 일어나기 위한 자극의 최솟값을 말한다. 즉, 역치 이상의 자극이 주어져야만 반응을 하게 된다. 다섯 번째는 생물학적으로 Rebound라고 부르며 이 또한 잠의 특별한 특징이다.
행동을 바탕으로 잠을 정의하면 다음 질문을 생각해볼 수 있다. 잠은 인간만 자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동물들에 위 5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행동을 보이는지 실험을 하면 된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동물은 이러한 특징을 만족하는 행동을 한다, 즉 잠을 잔다. 초파리, 해파리, 예쁜꼬마선충, 연체동물도 위 조건들을 만족하는 행동을 보인다. 대부분의 동물에게 이런 공통된 특징이 발견되므로 세포 안 DNA에 잠의 유전자가 들어있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실제로 현재는 초파리나, 예쁜 꼬마 선충, 지렁이 같은 동물들의 DNA를 검사하여 잠의 유전자가 무엇이며 다른 종간에 이러한 유전자가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알아보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실제로 사람마다 잠이 많은 사람이 있고 작은 사람이 있는 것도 유전자의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다.

잠을 자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이제까지는 잠이 무엇이며 어떤 동물이 잠을 자는지 알아보았다면 이제는 잠이 왜 중요하며 왜 자야 하는지 알아볼 것이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어서 명확한 대답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생각할 점은 있다. 먼저, 잠은 생물학적으로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야생은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세상이다. 험난한 생태계에서 느긋하게 외부의 자극을 느끼지 못하며 쉬고 있다가 포식자에게 잡아먹힌다면 그만큼 바보 같은 일이 없을 것이다. 즉, 살아남는 자가 승자인 자연에서 잠을 자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그리고 이는 역설적으로 잠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이러한 단점을 딛고 일어날 만큼의 장점이 있었기에 모든 생물이 잠을 자게끔 진화하였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현재까지 알려진 잠의 기능을 알아볼 것이다. 먼저, 잠은 뇌의 기능을 도와준다. 잠을 적게 잔 사람은 다음날 의사결정이나 문제 해결,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다음으로 잠은 기억력에 도움을 준다. 잠은 기억을 정리하여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바꾸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잠은 신체를 회복할 시간을 주고 호르몬의 균형을 맞춰준다고 한다.

혼밥, 혼영화, 혼잠 : 비사회적 행복
지금까지 우리는 잠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았고, 잠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활적인 측면과 과학적인 측면으로 나누어서 생각해보았다. 이제는 잠의 또 다른 측면을 바라보려고 한다. 많은 사람은 잠을 통해서 행복을 느낀다. 특히 어머니께서 그런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나는 지금보다 훨씬 어릴 때 엄마의 그런 말이 어릴 때는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행복하다는 것은 뭔가 행복한 활동을 해야지 드는 감정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상의 피곤함을 종종 느끼는 나는 이제 잠을 통해 행복할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할 수 있다. 잠을 자면 왜 행복해지는지 더 자세히 알아보려고 한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듣고 과반수의 한국 대학생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가족이나 우정과 같은 관계적 개념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이렇듯 행복을 사회적이라고 인식을 하지만 인간이 늘 사회적일 수는 없다. 사람은 인생의 삼분에 일 가량을 잠을 자는 데 활용하고 이 시간 동안 우리는 본질적으로 홀로다. 따라서 행복의 상당 부분이 비사회적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잠도 이러한 비사회적 행복의 한 종류이다.

행복의 핵심은 소확행이다.
현재 사회에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져 널리 쓰이고 있다. 별 건 아니지만 하루를 기분 좋게 만드는 그런 행복들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소확행의 가치는 사회적인 현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리학적인 연구로 보일 수 있다. 실제로 심리학 연구에서도 빈번한 긍정적 경험이 행복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강렬한 긍정적 경험은 드물게 발생할 뿐 아니라, 부정 정서를 동반하거나 다른 긍정적 경험을 희석하는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 들어 갑자기 성공을 하게 되었을 때, ‘실패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성공이라는 잠깐의 행복 뒤에 따라오는 두려움 때문에 전체적으로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수면은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한다.
수면은 하루를 주기로 매일 반복되는 활동임을 생각할 때, 수면은 빈번한 즐거움을 제공함으로써 행복의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다. 실제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하루 동안의 수면의 질이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 확인되었으며 잠을 잘 잔 사람일수록 전날의 기억을 긍정적으로 떠올리는 경향이 있었다. 앞서 뇌의 기능 중 일부는 기억을 정돈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행복이라는 것은 한순간의 감정 뿐만 아니라 한순간의 기억까지 포함한다는 점에서 미루어 볼 때, 긍정적으로 기억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할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잠은 단순히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
잠은 OO 한 것이다.

우리는 잠을 생활적, 과학적, 행복의 측면에서 들여다보았다. 이 모든 것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나는 잠을 “소중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잠은 생활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행복의 측면에서도 소중한 존재이다. 어떤 사람들은 잠을 소중하지 않은 존재, 짐 덩이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잠은 우리가 좋은 대학, 좋은 집, 좋은 자동차 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혹시나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면, 과연 진짜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잠이라는 것은 인간이라는 종이 등장하기 전부터 동물들을 지배하던 하나의 행위였으며 잠은 우리 생활의 기준이 되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삶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행복의 요소이다. 우리 모두 오늘 밤은 잘 자자!
<참고자료>
[1] 신지은, 김정기, 임낭연 (2017). 청년기의 수면과 행복. 한국심리학회지: 문화 및 사회문제, 23(2), 271-293
[2] Alex C. Keene, Erik R.Duboue (2018). The origins and evolution of sleep.
[3] https://www.news-medical.net/health/Function-of-Sleep.aspx
<이미지>
[1] https://violetsleepbabysleep.com/
[2] https://tenor.com/view/crazy-gif-5155755
[3] https://a-z-animals.com/animals/jellyfish/
[4] https://jolggu.tistory.com/531
[5] https://notefolio.net/lxxhyeonsin/94874

Bio 학생기자 유시오
2019년 가을호
에세이
신경생물학,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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