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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위 유령


고속도로를 위를 달리던 와중 갑자기 전방의 차들이 줄줄이 멈춰서기 시작했던 경험이 있는가? 아마 누구나 한번쯤 명절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뵈러 가는 길에 차가 너무 막혀 지루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무언가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분명 고속도로에는 정지 신호도 없고, 제한 속도가 크게 바뀌지도 않고, 길이 갑자기 좁아지지도, 사고가 나지도 않았는데 차들이 도통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맨 앞차는 대체 뭘하는 걸까?

교통체증은 단순히 하나의 요인만이 아니라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다. 도로 한복판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면 당연히 교통정체가 일어날 것이고, 폭우 폭설 등 운전자를 방해하는 날씨도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우리가 흔히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은 교통체증 발생 원인에서 고작 자동차 사고 24%, 날씨 14%, 도로정비 9%, 교통신호 4%를 차지한다. 즉, 나머지 49%는 명확한 이유가 없다는 것인데, 이처럼 뚜렷한 이유도 없이 교통이 거의 멈춘 경우를 ‘유령 정체(phantom traffic jam)’라고 부른다.

유령 정체(phantom traffic jam)

유령 정체는 일종의 연쇄 작용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차가 많든 적든 이론적으로 도로의 모든 차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일정한 속도로 달릴 수만 있다면 정체가 발생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차가 많은 상황에서 교통 정체가 나타나는 이유가 바로 연쇄작용 때문이다. 혼잡하지 않은 도로에서는 차선 변경, 급제동과 같이 사소한 교란이 다른 운전자의 반응과 적절한 조정으로 완화되어 전체적인 교통 상황에 딱히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반면 차가 많은 상황에서는 아주 작은 방해 요소만 있어도 쉽게 교통 체증이 유발되는데, 예를 들어 한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아주 살짝 밟았다고 해보자. 뒤따라가던 운전자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좀 더 세게 브레이크를 밟게 되고, 그 뒤의 운전자는 더 세게 브레이크를 밟게 된다. 이는 물결처럼 퍼져나가 결국 전체적인 교통 정체를 일으킨다. 방해 요소를 충분히 완화시킬 수 있는 임계 수치는 보통 자동차 간의 간격이 35m 미만으로 떨어졌을 때이다. 즉 자동차 간 간격이 35m 미만이 되면 역학적 불안정성이 높아지면서 작은 방해 요소가 큰 결과를 불러일으키는데,  이 불안정성은 양성 피드백 루프로, 연쇄 반응에 의해 나타난 교통 정체는 또 다른 연쇄 반응의 첫 시작점이 되어 더 큰 연쇄 반응을 일으키고, 결국 교통 체증은 점점 더 심해진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가지는 특성이 교통 체증을 악화시킴을 암시한다. 운전자들은 앞으로 일어날 상황에 대해 알 수가 없기에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아 완만히 속도를 늦출 기회를 놓치게 되고, 충돌하지 않기 위해서 브레이크를 세게 밟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근처에 있는 운전자들 모두가 브레이크를 밟게 된다. 게다가 운전자들은 지체에서 벗어날 때 급격하게 속도를 내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평균적인 교통 흐름보다 더 빠르게 운전하려한다는 것으로, 결국 또 다시 브레이크를 밟는 상황을 유발하여 또 다른 피드백 루프가 형성된다. 그런데 우리가 인간이라는 점이 문제라는 것은 달리 말하면 만약 앞으로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예측할 수 있다면, 교통 체증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에 주목받는 것이 자율주행차이다. 자율주행차는 전방 상황에 대한 정보를 연결된 차량이나 도로 센서에서 실시간으로 받으면서 전체적인 교통 흐름의 평균적인 속도에 알맞은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여 정체가 생기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미 교통량이 증가한 상황에서도 그것을 미리 예측하여 사람보다 더 일찍, 더 완만하게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다. 관련된 연구도 많이 진행되고 있는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운전자 20명당 자율주행차 한 대로도 교통 정체를 줄이고 방지하는 데 충분하다고 한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인간처럼 운전하도록 프로그래밍된 디지털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시뮬레이션한 결과 도로에 있는 차량의 10%만 자율주행차로 대체해도 교통 흐름을 개선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차량 속도를 두 배로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교통 체증을 해결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교통 체증이 단순히 운전자들의 짜증과 불쾌감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차량 운전 시간이 길어질수록 연료가 낭비되고 배기가스 배출이 증가하며, 계속되는 정차와 출발은 충돌 사고의 가능성을 높인다. 더 나아가면 교통 체증으로 인해 사람들이 생산성을 발휘한 시간이 낭비되는 ‘기회 비용’의 문제도 있다. 즉, 교통 체증은 사회적으로 꼭 해결해야 하는 문제 중 하나이다. 그런데, 결국 많은 차량, 차량의 밀도가 연쇄 반응의 시작이라면,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면 바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브라에스 역설(Braess's paradox)

답은 ‘아니오’이다. 독일의 수학자 디트리히 브라에스(Dietrich Braess)는 기능이 저하된 네트워크에서 일정 부분을 제거함으로써 오히려 이를 개선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를 브라에스의 역설이라고 하는데, 즉 수요가 일정한 상태에서 새로운 도로를 추가하면 전체적인 교통 정체 정도가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가지 일러두자면 ‘수요가 일정하다’는 점을 기억하라.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게 되면 신규 수요가 유도되어 차량 정체가 해소되지 않는다는 루이스-모그리지 명제와 구분해야한다. ) 다음 두 그림을 보라.


기존의 도로 모습
새로운 도로를 건설한 모습

우선 기존에 A지점에서 B지점으로 가는 길은 [그림1]에서와 같이 두 가지 경우가 있었다. 두 길 모두 좁은 지름길(갈색)과 넓은 도로(회색)로 이루어져있는데, 넓은 도로는 지나가는 차량의 수에 관계없이 무조건 50분을 소요하고, 좁은 지름길은 지나가는 차량의 수가 a대 일 때 소요시간도 a분이다. 40대의 차량이 A에서 B로 이동하고자 하는데, 처음에 위의 길로 15대가, 아래 길로 25대가 이동했다면 위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은 15+50=65분, 아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은 25+50=75분의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40대의 차량이 이동할 때는 더 짧은 시간이 걸리는 위의 길의 수요가 늘어날 것이고, 이것이 반복되다보면 결국에는 균형을 맞추어 각각의 길로 20대씩, 모든 차량이 길을 통과하는데 20+50=70분이 걸리는 상황이 오게 된다. 이때 정부에서 교통 정체를 해결하고자 [그림2]와 같이 두 길의 지름길을 잇는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였다. 이 새로운 도로는 차량의 수에 상관없이 통과하는데 5분을 소요한다. 두 도로의 수요가 평형을 이룬 상태에서 이 도로의 첫 개척자는 20+5+21=46분만에 B에 도달할 수 있다. 이는 무려 24분을 단축한 것으로, 사람들은 너도나도 새로운 도로를 이용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40명 모두가 이 새로운 도로를 이용하게 되면, A에서 B까지 40+5+40=85분이 소요된다. 이는 오히려 기존이 70분에서 15분이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른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모두가 새로운 도로로 갈 때 혼자 위의 길 혹은 아래 길을 간다면 40+50=90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브라에스 역설의 근본적인 원인은 운전자 각각이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는 점이다. 만약 도로가 새로 개설되었다고 하더라도 새로 개설된 도로를 아무도 사용하지 않고 모두가 기존 도로를 그대로 사용하자고 약속하고 그 약속을 모두가 지킨다면 모두가 15분을 절약할 수 있다. 그러나 목적지가 같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약속한다는 전제부터 성립할 수가 없기에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사실 위의 예시처럼 기존의 도로를 잇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도로를 하나 더 만든다면 교통 정체는 완화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브라에스 역설이 실제로 나타난 사례도 꽤 있다. 1990년 지구의 날을 맞아 뉴욕 맨해튼 42번가를 일시적으로 폐쇄하였는데, 그 결과 오히려 교통 혼잡이 감소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는 1969년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였지만 교통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고, 결국 일부 도로를 폐쇄했는데 그제서야 상황이 개선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에서 청계천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일부 도로를 철거하였는데, 그 결과 서울 주변의 교통 정체가 완화되었다.

도로 위의 물리학

지금까지 도로 속에 숨겨진 물리학에 대해 알아보았다. 왜 ‘물리학’이냐고 묻는다면 차량 간 연쇄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 충격파가 퍼져나가는 모습과 물리학적으로 유사하여 물리적으로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이용해 도로 상황을 모델링할 수 있는데, 내용이 기사에 담기에는 다소 어려운 면이 있어 개념 설명만을 다루었으니 관심이 있다면 관련 논문을 찾아볼 것을 추천한다.



김초은 학생기자 | 물리지구 | 지식더하기


참고자료

[1] Richard Steinberg,Willard I. Zangwill, (1983) The Prevalence of Braess' Paradox. Transportation Science 17(3):301-318.

[2] Raphael E. Stern, Shumo Cui, Maria Laura Delle Monache, Rahul Bhadani, Matt Bunting, Miles Churchill, Nathaniel Hamilton, R’mani Haulcy, Hannah Pohlmann, Fangyu Wu, Benedetto Piccoli, Benjamin Seibold, Jonathan Sprinkle, Daniel B. Work, (2018) Dissipation of stop-and-go waves via control of autonomous vehicles: Field experiments 89:20.-221


첨부한 이미지 출처

[1]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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