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선택 양자 지우개”에 뒤늦은 선택은 없다
- KOSMOS KSA
- 2025년 6월 25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5년 7월 13일
과거를 바꿀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언젠가 과거로 시간여행을 다닐 수 있을까요? 영화 <테넷> (2020)의 주인공들은 ‘역엔트로피’를 만들어 이를 가능케 합니다. 혹시, 영화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니냐고요? 놀랍게도, 과학계에서도 비슷한 개념이 제안된 사례가 있습니다. 1978년, 물리학계의 거장 존 휠러(J. A. Wheeler)는 미래의 선택이 과거를 바꿀 수 있다는 ‘뒤늦은 선택’ (delayed choice, DC) 패러다임을 발표했습니다. [1] 그리고 1982년, 또 다른 물리학자 말란 스쿨리(M. O. Scully)는 DC 패러다임이 적용된 ‘뒤늦은 선택 양자 지우개’ (delayed choice quantum eraser, DCQE) 실험을 제안합니다. [2] 어쩌면 과거를 바꾼다는 것은, 한낱 공상에 불과하지만은 않을지도 모르겠군요.
‘양자 지우개’로 과거를 지울 수 있다고요?
휠러와 스쿨리는 ‘미래가 과거를 바꾼다’는 기상천외한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앞에서 언급한 DCQE 실험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겁먹을 것은 없습니다! 익히 알려진 ‘겹실틈’ (이중슬릿) 실험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1) 겹실틈 실험

위와 같은 세팅에서, 우리는 두 개의 작은 틈 사이로 전자들을 통과시키고자 합니다. 왼쪽 그림처럼 전자들이 어떤 틈을 통과하는지 관측하지 않는다면, 전자들은 마치 파동처럼 간섭을 일으켜 스크린에는 간섭 무늬가 나타납니다. 반대로, 오른쪽 그림처럼 전자들이 어떤 틈을 통과하는지 관측한다면, 전자들이 마치 입자처럼 행동하여 스크린에는 두 줄의 무늬가 나타납니다. 우리는 이제 이 현상을 표현하기를, ‘어느 길 정보’가 (which-path information) 지워지거나 기록되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왼쪽과 같은 경우에는 전자들이 어떤 경로를 택하였는지 알 수 없으므로 어느 길 정보가 지워진 것이고, 오른쪽의 경우에는 전자들이 어떤 경로를 택하였는지 알 수 있으므로 어느 길 정보가 기록된 것입니다. 요약하면, 우리는 실틈을 관측하거나 하지 않는 선택을 함으로써 어느 길 정보를 기록하거나 지울 수 있습니다.
(2) 양자 지우개 실험

양자 지우개 실험은 겹실틈 실험과 매우 유사합니다.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은, 이 실험에서는 실틈을 통과하는 입자와 양자 얽힘 상태에 있는 다른 입자를 추가하여 실틈의 관측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관례적으로, 추가된 입자를 ‘아이들러(idler)’, 실틈을 통과하는 입자를 ‘신호(signal)’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아이들러 입자에 적절한 조작을 가하여 신호 입자가 통과하는 실틈을 관측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때 아이들러 입자를 적절히 조작함으로써 신호 입자의 어느 길 정보를 지울 수 있기 때문에 이 실험은 ‘양자 지우개(quantum eraser, QE)’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3) 뒤늦은 선택 양자 지우개 실험

이제 [아이들러 입자의 조작]을 사건1로, [신호 입자의 실틈 통과]를 사건2라고 불러봅시다. 두 사건의 선후관계가 어떻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울까요? 당연히 사건1이 먼저 일어나 실틈의 관측 여부가 결정된 뒤, 사건2가 일어나 신호 입자가 실틈을 통과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일반적인 양자 지우개 실험은 이처럼 사건1이 먼저 일어난 뒤 사건2가 일어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QE 실험의 놀라운 점은 사건2가 먼저 일어난 뒤 사건1이 일어날 수 있도록 실험 장치를 잘 배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세팅한 실험을 ‘뒤늦은 선택 양자 지우개(DCQE)’라고 합니다. 마치 겹실틈 실험에서, 전자가 스크린에 도달한 후에서야 어떤 실틈을 통과했는지 관측 여부를 결정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그렇게 실험을 할 수 있다는 것부터가 놀라운데, 더욱 놀라운 점은 그렇게 실험을 하여도 사건1과 사건2의 순서를 뒤집기 전과 결과가 같다는 것입니다! [3] 이는 마치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쳤는데 다음 날 와보니 소가 돌아와 있는 것만큼이나 이상한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미래가 과거에 영향을 준다는 ‘역향인과’의 아이디어가 등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미래가 과거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경우, 가령 손자가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할아버지를 해치는 일과 같은 모순이 허용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역향인과를 반박하고자 합니다.
‘먼저’와 ‘나중’을 구분하기
역향인과라는 아이디어를 어떻게 반박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약간의 특수상대론적 배경지식이 필요합니다.

두 사건 사이의 관계로 가능한 것은 몇 가지가 있을까요? 일반적으로는 사건1이 먼저 일어나는 경우와 사건2가 먼저 일어나는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하겠지만, 현대 물리학의 시각에서는 한 가지 경우가 더 있습니다. 바로 ‘사건의 순서가 정의되지 않는 경우’이며, [그림 4]의 마지막 도표가 이에 해당합니다. 그림만 봤을 때는 주황색 사건이 먼저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관찰자에 따라 초록색 사건이 먼저 일어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기에 두 사건의 순서는 정의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관계를 ‘공간꼴 분리’라고 부릅니다. 공간꼴 분리 관계에 있는 두 사건은 선후관계가 정의되지 않기 때문에, 인과관계가 성립할 수 없습니다. (참고로, [그림 4]의 첫 번째나 두 번째 상황은 모든 관찰자가 사건의 순서를 동일하게 보기 때문에 선후관계가 잘 정의되며, 인과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공간꼴 분리 양자 지우개’ 실험
초록색 점을 사건1, 주황색 점을 사건2라고 하면, QE 실험은 맨 왼쪽 상황, DCQE 실험은 가운데 상황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맨 오른쪽 상황과 같은 실험 또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를 ‘공간꼴 분리 양자 지우개(spacelike-separated quantum eraser, SQE)’라고 부르겠습니다. 만약 SQE 실험을 실제로 수행해서, QE나 DCQE와 같은 결과를 얻는다면 이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사건1과 사건2가 인과적 영향을 주고받을 수 없는 상태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의미이므로, 그 현상은 ‘인과’에 의한 것이 아니며, DCQE를 역향’인과’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역향인과는 환상에 불과하다
이제 SQE 실험의 결과를 보는 일만이 남았습니다. 2024년 KSA R&E 물리02팀에서는 이 실험을 실제로 수행했고, QE, DCQE와 동일한 현상이 일어남을 확인하였습니다. [4] 그러니 DCQE의 역향인과적 해석은 잘못되었다는 사실이 실험적으로 입증된 것입니다! 미래의 선택을 통해 과거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그저 환상에 불과했습니다.
그렇다면 SQE 실험의 결과까지도 포괄할 수 있는, (역향)인과가 아닌 설명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핵심은 ‘양자 얽힘’에 있습니다. 양자 지우개 실험을 설계할 때 얽힌 상태의 입자를 사용했기 때문에 시간을 거스른 인과처럼 보이는 현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5] 다만 양자 얽힘은 현재까지도 완벽하게 이해되지 못한 개념이기에, 얽힘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언제 일어나는지 등을 명확히 밝히는 것은 물리학이 풀어나가야 할 향후 과제가 될 것입니다.
신현 학생기자 | Physics | 지식더하기

참고자료
[1] Wheeler, J. A. (1978). The “Past” and the “Delayed-Choice” Double-Slit Experiment. In Elsevier eBooks (pp. 9–48).
[2] Scully, M. O., & Drühl, K. (1982). Quantum eraser: A proposed photon correlation experiment concerning observation and “delayed choice” in quantum mechanics. Physical Review. A, General Physics, 25(4), 2208–2213.
[3] Kim, Y.-H. et al. (2000). Delayed “Choice” Quantum Eraser. Physical Review Letters, 84(1), 1–5.
[4] 김규민, 문가온, 신현, 윤하연 (2024). DCQE의 역향인과적 해석에 대한 실험적 반박. KSA R&E 2024.
[5] Kastner, R. E. (2019). The ‘Delayed Choice Quantum Eraser’ neither erases nor delays. Foundations of Physics, 49(7), 717–727. https://doi.org/10.1007/s10701-019-002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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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IST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 온라인 과학매거진 KOSM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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