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화학, 미지의 반응을 연구하다
- KOSMOS KSA
- 7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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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과 실험은 언제나 함께 발전해 왔습니다. 연금술의 시대를 지나, 현대 화학이 체계를 갖추기까지, 실험은 화학의 눈이자 손이었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실험 역시 점점 더 정밀해지고 정교해졌죠. 화학자들은 이제 이런 질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물질이 서로 반응할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는 실험을 해봐야만 알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해, 과학자들은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답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계산 화학(Computational Chemistry)’입니다. 이제 화학자들은 시험관 대신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고가의 시약도, 복잡한 장비도 없이,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수많은 반응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죠. 마치 미래를 미리 들여다보는 것처럼, 컴퓨터는 화학 반응의 경로와 결과를 계산해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약물을 개발할 때, 연구자들은 더 이상 화합물을 하나하나 합성해서 그 효과를 관찰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수백 가지의 비슷한 화합물 중 어느 것이 가장 효과적일지 계산을 통해 추려내고, 효과적으로 예상되는 화합물 몇 가지만 실제로 실험을 진행하죠. 시간과 자원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동시에, 정확성도 높일 수 있죠. 심지어 화학자들은 계산화학을 통해 반응이 어떻게 일어날지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어느 경로가 가장 에너지가 낮은지, 어떤 조건에서 더 잘 일어날지를 컴퓨터로 먼저 계산하고 있습니다. 화학을 '실험의 과학'에서 '예측의 과학'으로 바꾸고 있는 계산 화학. 그 놀라운 세계로 함께 들어가 볼까요?
계산 화학이란 무엇인가?
전통적으로 화학 연구는 실험실에서 시약을 섞고, 반응을 관찰하며 결과를 얻는, 우리가 흔히 화학자라고 하면 떠올리는 모습으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실험실에서 유리관 사이로 끓고 있는 액체, 정밀한 측정 장비를 조작하는 손길, 그리고 조심스럽게 떨어뜨린 한 방울이 만들어내는 변화. 이 모든 과정은 과학의 진보를 이끌어낸 핵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실험에는 언제나 시간, 비용, 그리고 수많은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죠. 화학이 발전함에 따라, 화학자들이 연구하는 반응은 점점 더 정교하고 복잡해졌고, 특정한 환경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어떤 반응은 수백 도의 뜨거운 열이나, 대기압의 수만 배에 달하는 고압 조건에서만 일어납니다. 또는, 단 한 번의 흡입만으로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는 고독성 물질을 다뤄야 하기도 하죠. 이런 상황에서 수많은 후보 화합물을 하나하나 합성하고 실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고, 위험 부담도 큰 활동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필요한 결과에 도달하기까지는 수백 번의 반복 실험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컴퓨터 계산을 통해 분자의 구조, 성질, 반응 경로를 예측하는 화학 분야입니다. 위험하고 비싼 실험 대신, 연구자들은 컴퓨터 속에서 '가상 실험'을 수행합니다. 컴퓨터는 분자 구조를 입력받아 수학적 모델과 물리 법칙에 따라 분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계산합니다. 예를 들어 두 분자가 충돌했을 때 결합이 일어날지, 반응이 몇 단계로 진행될지, 그 반응이 일어나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어느 정도인지 등을 예측할 수 있죠. 마치 실험실을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옮겨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계산의 기반은 대부분 양자역학에 있습니다. 분자는 전자와 원자핵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의 거동은 고전역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매우 정밀한 양자역학 모델이 필요합니다. 대표적인 계산 방법에는 하트리-폭(Hartree–Fock) 방법, 밀도범함수이론(DFT: Density Functional Theory) 등이 있습니다. 계산 화학의 발전은 컴퓨터 성능의 향상과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과거에는 단순한 분자 하나를 계산하는 데도 몇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는 슈퍼컴퓨터나 병렬 처리 기술을 이용해 수백 개의 화합물을 동시에 비교·예측할 수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실험에 앞서 계산을 통해 유망한 후보 물질을 먼저 좁혀내고, 이후 일부만을 실제 실험으로 검증하는 방식으로 연구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실제 실험이 어렵거나 위험한 조건에서의 반응, 또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분자에 대한 연구에서 계산 화학은 무엇보다 강력한 도구로 기능합니다. 실험이 갈 수 없는 곳까지 먼저 가보고, 성공 가능성이 높은 길만을 실험으로 이어주는 것입니다. 계산 화학은 그렇게 과학의 속도를 높이고, 위험은 줄이며, 화학을 점점 더 ‘예측 가능한 과학’으로 바꾸어가고 있습니다.
계산 화학은 어떻게 사용되는가?
계산 화학은 단순히 이론적인 도구에 머물지 않고, 오늘날 다양한 산업과 연구 현장에서 실제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신약 개발과 신소재 탐색 분야에서 그 역할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죠. 신약 개발 과정에서 계산 화학의 등장은 마치 혁신과도 같았습니다. 전통적인 방식에서는 수천 개의 화합물을 일일이 합성하고, 생체 내에서의 효과를 실험을 통해 확인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은 시간과 비용이 막대하게 들 뿐만 아니라, 많은 동물 실험을 필요로 하기도 합니다. 계산 화학은 이 복잡한 절차를 크게 단축시켜 줍니다. 약물 후보 물질을 컴퓨터로 미리 설계하고, 분자 도킹이라 불리는 기법을 통해 화합물이 특정 단백질과 얼마나 강하게 결합할 수 있는지를 예측합니다. 이를 통해 수많은 화합물 중에서 가장 가능성 있는 몇 가지를 선별하고, 그 후에 실제 실험으로 넘어가 필요한 실험을 획기적으로 감소시켰죠. 이 중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코로나 19 백신 개발입니다. 팬데믹 초기, 전 세계 연구자들은 SARS-CoV-2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 구조를 밝혀낸 뒤, 이를 표적으로 하는 약물 분자들을 컴퓨터를 통해 예측했습니다. 당시 사용된 오픈소스 플랫폼 중 하나인 Folding@home은 전 세계 수많은 개인용 컴퓨터를 연결해 단백질의 구조적 변화를 시뮬레이션했고, 여러 제약사들이 계산 화학을 통해 렘데시비르, 파비피라비르 등 기존 항바이러스제의 결합 가능성을 빠르게 분석해 임상 시험을 앞당길 수 있었습니다. 계산 화학 덕분에 전염병 대응의 속도와 정확성이 한층 높아진 것이죠.

이처럼 계산 화학은 새로운 전염병이나 변이 바이러스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계산 화학의 또 다른 주요 응용 분야는 신소재 개발입니다. 예를 들어, 고효율 태양전지 소재나 이차전지용 전극 물질, 환경 친화적 촉매 등을 개발하는 데 있어 수천, 수만 가지의 원소 조합을 일일이 실험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죠. 이럴 때 계산 화학은 특정 원소들이 어떤 전자 구조를 가질지, 어떤 반응 환경에서 안정할지를 예측해줍니다. 이를 통해 실험실에서 실제 합성하기 전의 신물질을 선별하고, 효율적으로 실험 자원을 투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환경 문제나 에너지 저장 시스템 개선을 위한 연구에서도 계산 화학은 빠질 수 없는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이산화탄소를 효율적으로 분해할 수 있는 촉매 물질을 찾거나, 전기를 더 오래 저장할 수 있는 전해질 조합을 탐색하는 과정에도 계산 화학은 깊숙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계산 화학은 단지 분자의 이론적 구조를 계산하는 것을 넘어서, 현대 과학이 해결해야 할 에너지, 환경 등의 복잡하고 중요한 문제들에 실질적인 해답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실험실과 컴퓨터 사이의 경계는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고, 그 중심에는 계산 화학이 서 있습니다.
계산 화학의 미래
계산 화학은 분명 놀라운 가능성을 지닌 도구이지만, 아직은 넘어야 할 한계들도 분명 존재합니다. 가장 먼저 지적되는 것은 계산 정확도와 자원 문제입니다. 계산 화학은 분자의 구조와 성질을 예측할 때 물리적으로 정교한 수식을 기반으로 하지만, 모든 상호작용을 완벽하게 반영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분자의 크기가 커질수록, 전자 간 상호작용이나 환경적인 영향까지 고려해야 하므로 계산이 기하급수적으로 복잡해지죠. 예를 들어, 단백질처럼 수천 개의 원자로 이루어진 생체 고분자 구조를 정확하게 시뮬레이션하기 위해서는 수주 혹은 수개월에 걸친 슈퍼컴퓨터 연산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또한 계산에 사용되는 모델과 근사 방법의 한계도 문제입니다. 현실에서는 용매, 온도, 압력, pH 등 다양한 변수들이 반응에 영향을 미치지만, 계산 모델에서는 이를 단순화하거나 이상적인 조건으로 가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과적으로 계산 결과가 실제 실험 결과와 완전히 일치하지 않거나, 실험에선 예상치 못한 변수가 개입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따라서 계산 화학은 실험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여전히 실험을 보완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에 머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계산 속도와 정확도를 동시에 높이기 위한 새로운 방법들이 등장하고 있죠. 예를 들어, 기계학습과 인공지능 기술이 계산 화학에 접목되면서, 기존보다 훨씬 빠르게 분자 구조와 반응성을 예측할 수 있는 모델들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대규모 분자 데이터베이스를 학습한 AI는 특정 조건에서 어떤 화합물이 가장 반응성이 높을지, 어떤 조합이 안정적인지를 과거의 데이터와 패턴을 바탕으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계산 화학은 점점 더 데이터 기반의 지능형 도구로 진화하고 있는 중입니다. 미래에는 양자 컴퓨터의 상용화도 계산 화학의 큰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기존의 컴퓨터는 전자구조 계산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행렬 연산을 다루는 데 한계가 있었지만, 양자 컴퓨터는 분자 자체가 양자적 존재라는 점에서 이론적으로 가장 자연스러운 계산 환경을 제공합니다. 실제로 IBM, Google, Microsoft 등 주요 IT 기업들은 양자 화학 시뮬레이션 기술을 미래 산업의 핵심 분야로 보고 투자를 이어가고 있죠. 결국 계산 화학의 미래는 단순히 '계산을 더 잘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과학자가 물질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과정이며, 실험과 이론의 경계를 허물어 보다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혁신입니다. 오늘날 실험실 한쪽 구석의 컴퓨터에서 시작된 이 기술은, 머지않아 과학의 중심으로 떠오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김민규 학생 기자 | 화학생물 | 지식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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