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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 온라인 과학매거진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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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을 못하는 사람들, 아판타시아란 무엇인가

지금 당장 눈을 감은 뒤 빨간 사과를 하나를 머릿속에 떠올려보라.

여러분 중 누군가는 윤기가 나는 사과를 떠올릴 것이고, 특이한 누군가는 먹기 좋게 썰린 사과들을 떠올릴 것이다. 어떤 형태든, 사과를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사과를 떠올리려 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검은 바탕으로만 가득 차 있을 뿐이다.

나무에 매달린 빨간 사과 
나무에 매달린 빨간 사과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사람들은 아판타시아(Aphantasia)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리스어로 “없는” 또는 “결핍된”이라는 의미를 가진 접두사 a- 와 “상상” 또는 “심상”을 의미하는 phantasia가 결합된 단어로, 직역하면 “상상을 할 수 없는”이라는 뜻이 된다. 즉, 이 증상을 가진 사람들은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없다.


이처럼 우리 대부분에게는 당연한 ‘상상’이, 전세계의 1-4%의 사람들에게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같은 방식으로 상상하고 있는 것이 맞을까?

 

아판타시아란 정확히 무엇인가?

앞에서 간단히 서술했듯, 아판타시아는 머릿속에서 시각적 이미지를 떠올릴 수 없는 신경 인지적 특성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과거에 본 장면이나 사람, 물체 등을 머릿속으로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예를 들어, 형설관의 책상 형태나 기숙사 룸메이트의 얼굴을 눈감고도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아판타시아를 가진 사람들은 이와 같은 시각화 능력이 전혀 없거나 극히 제한적이다.

형설관 교실에 있는 책상의 색은 무엇일까?
형설관 교실에 있는 책상의 색은 무엇일까?

이 용어는 2015년 영국 엑서터 대학교의 신경 과학자 애덤 제먼(Adam Zeman) 박사가 처음 사용하였다. 당시 환자 한 명이 뇌 수술 이후 시각적 상상을 전혀 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어 연구가 시작된 것이다. 제먼 박사는 이를 “마음의 눈이 닫힌 상태”라고 표현하며 “A-phantasia”라는 뜻의 용어를 만들었다.

 

혹시 내가 아판타시아?

아판타시아는 뇌 스캐닝만으로는 쉽게 진단되지 않는다. 따라서 VVIQ(Vividness of Visual Imagery Questionnaire)라고 불리는 자가 진단으로써 확인한다. 테스트에는 아래와 같은 질문에 응답하며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


“가족의 얼굴을 떠올려 보세요. 그 얼굴의 생생함은 어느 정도인가요?” (1점 : 전혀 떠오르지 않음 ~ 5점 : 사진처럼 생생함)


아판타시아를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모든 항목에서 1점이나 2점을 선택하며, 아무런 이미지도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시각적인 상상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아판타시아 증후군은 선천적인 경우가 많기에 일반적인 사람들이 말하는 상상이 자신과 다르다는 사실을 성인이 되고 나서 알아채는 경우도 많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 증상이 All or Nothing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전혀 이미지를 떠올릴 수 없는 사람이 있는 반면, 윤곽선만 보이는 사람과 단색 이미지로 떠올려지는 사람 또한 존재한다.

스펙트럼으로 존재하는 아판타시아
스펙트럼으로 존재하는 아판타시아

아판타시아의 원인과 뇌과학적 분석

사람마다 왜 상상의 ‘선명도’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일까? 앞선 그림에서 보여지는 스펙트럼 이미지처럼 어떤 사람들은 머릿속에 영화같이 선명한 이미지를 그릴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깜깜한 어둠만이 떠오른다고 말한다. 이러한 차이는 상상을 구체화하는 뇌 부위들의 기능 차이에 의해 발생한다. 상상이라는 것은 눈을 감고 멍하게 떠올리는 간단한 행동 같지만, 실제론 여러 뇌 영역이 동시에 작동해야 가능한 복잡한 인지 작용이다.

대뇌 피질의 부위들 
대뇌 피질의 부위들 

이러한 작용의 중심에는 후두엽(Occipital lobe)에 위치한 시각 피질(Visual cortex)이 있다. 이 부위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모든 시각 정보를 해석하는 역할을 하지만, 눈을 감고 이미지를 상상할 때도 비슷하게 작동한다. 즉, 우리는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그릴 때도 마치 실제로 보고 있는 것처럼 시각 피질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시각 피질만으로는 이미지를 구체화할 수 없다. 이미지화는 단순히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기억, 공간 인식, 감정적 맥락이 함께 어우러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두엽(Prefrontal cortex)과 두정엽(Parietal cortex)이 함께 작동한다. 전두엽은 우리가 무엇을 떠올릴지를 결정하고, 주의를 집중시키며, 그 이미지에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두정엽은 머릿속 공간에서 이미지를 배치하고 조작하는 역할을 맡는다. 머릿속 공간이라 함은, 앞서 사과를 상상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같이 떠올린 물체가 존재하는 공간을 말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사과가 바구니 안에 있는 모습을 상상하거나, 누군가가 웃는 모습을 머릿속에 만들어낼 수 있다.


아판타시아를 가진 사람들은 이러한 뇌 부위들 간의 연결이나 협력이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다. 특히 시각 피질이 이미지를 재구성하기 위한 자극을 받지 못하거나, 다른 인지 영역들과의 상호작용이 약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인해, 아무리 의식적으로 떠올리려 해도 뇌가 시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결과적으론 머릿속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아직 정확한 메커니즘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학계에서는 아판타시아가 뇌의 특정 영역의 손상이기보다는, 연결성과 활성화 패턴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보고 있다.

 

fMRI로 본 아판타시아인의 뇌
아판타시아를 가진 사람과 아닌 사람의 뇌 fMRI 비교
아판타시아를 가진 사람과 아닌 사람의 뇌 fMRI 비교

아판타시아에 대한 연구에서 뇌의 실제 활동을 비교하는 가장 뛰어난 방법은 fMRI다. fMRI는 어떠한 일을 수행할 때 뇌의 어느 부위가 활성화되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위의 이미지는 자서전적 기억(AM : autobiographical memory)과 상상 기억(MA : mental imagery memory) 과제를 수행할 때 아판타시아인과 대조군의 뇌 반응을 비교한 것이다.


자서전적 기억을 떠올릴 때의 뇌 반응 (A : 아판타시아 / B : 일반인)

아판타시아 그룹(A)의 fMRI 스캔 이미지를 보면, 후두엽의 시각 피질을 포함한 일부 영역만 제한적으로 활성화되어 있다. 특히 오른쪽 후두엽 시각 처리 영역에서만 약한 반응이 보이며, 활동 범위도 좁고 T-value도 낮다. 반면에 대조군(일반인, B) 그룹은 훨씬 넓은 뇌 영역에서 강한 활성화가 관찰된다. 시각 피질뿐만 아니라 해마, 전전두엽, 측두엽 등 다양한 부위가 활발하게 반응하며, 뇌가 복합적인 기억 회상 및 이미지 재구성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선천적? 후천적?

아판타시아에 대한 연구는 비교적 최근에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 원인이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와 사례들을 종합하면, 아판타시아는 선천적 유형과 후천적 유형 모두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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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아판타시아 환자는 자신이 이미지를 떠올릴 수 없다는 사실을 어릴 때부터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상상이라는 것이 워낙 주관적인 경험이다 보니, 머릿속에 이미지가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도 자신처럼 단지 개념만 떠올리는 것이라고 여겼던 경우가 많다. 그러다 어느 날, "사과를 눈앞에 떠올려 보라"와 같은 질문에 다른 사람들이 색깔, 질감, 그림자까지 명확히 그린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례들은 대체로 선천적(발달적) 아판타시아로 분류된다. 이 유형은 뇌의 시각적 상상과 관련된 회로가 발달 단계에서부터 정상적인 연결을 이루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fMRI 연구에서도 이들은 시각 피질의 활동성이 전반적으로 낮고, 이미지화 작업을 할 때에도 일반인들과는 다른 뇌 반응 패턴을 보였다.


선천적 아판타시아는 유전적 요소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일부 연구에서는 아판타시아가 가족 내에서 유사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보고되었다. 즉, 특정 유전자 조합이나 신경 발달 경로가 이미지 상상 능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가설이다. 물론 아직 유전자가 직접적으로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연구는 점점 이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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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후천적 아판타시아는 외부 요인에 의해 이미지화 능력을 상실한 경우를 말한다. 이 유형은 두부 외상, 뇌졸중, 수술, 심한 스트레스 혹은 정신적인 충격 이후에 갑작스럽게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교통사고 이후 머릿속에서 이미지를 떠올리는 능력을 잃었다고 보고했고, 또 다른 사람은 뇌 수술을 받고 난 뒤 상상이 불가능해졌다고 이야기했다.


후천적 아판타시아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과거에는 분명히 이미지화 능력이 있었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꿈에서는 생생한 이미지를 보지만, 깨어 있는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다고 말한다. 이는 뇌의 특정 네트워크가 손상되거나 차단되었을 때 이미지 생성 회로에 장애가 생긴다는 것을 암시한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후천적 아판타시아가 반드시 뇌의 물리적 손상에만 의한 결과는 아니라는 점이다. 심리적 요인, 예를 들어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심한 우울증 등도 뇌의 상상 회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어떤 환자는 심리 치료 과정에서 점차 상상력을 회복한 경우도 있다. 이는 아판타시아가 단일 원인이 아니라,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결과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상상의 부재, 그 너머를 상상하다

아판타시아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신경과학의 퍼즐이다. 단순히 ‘머릿속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사실을 넘어서, 우리는 그것이 인간의 기억, 감정, 창의성, 심지어 자아에까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점차 이해해가고 있다. 누군가는 머릿속 풍경 하나 없이도 뛰어난 작가나 과학자가 되고, 또 누군가는 잃어버린 상상력의 감각을 아쉬워하며 살아간다. 상상이 사라진 뇌를 바라보는 과학의 눈은, 오히려 더 깊은 ‘상상’으로 우리를 이끈다. 당신의 머릿속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장희운 학생기자 | Chemistry & Biology | 지식더하기


참고자료

[1] https://elifesciences.org/

[2] https://my.clevelandclinic.org/

[3] https://aphantasia.com/


첨부 이미지 출처

[1] https://k-apple.kr/

[2] https://www.freepik.com/

[3]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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