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생물학, 생명의 비밀을 풀 수 있는 가장 작은 열쇠
- KOSMOS KSA
- 7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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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세계와 생명의 만남
얼핏 보기에 생명 현상과 양자 역학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양자역학은 원자보다도 작은 미시 세계에서 작동하는 법칙이고, 생물은 우리의 삶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거시 세계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양자 세계를 활용하고 있다. 영국의 생물학자인 J.B.S 홀데인은 “우주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기묘하며,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도 더 기묘하다”는 말을 남겼는데, 현대 과학은 이 말이 사실임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연구들에서 양자생물학이라고 불리는 분야에서, 철새의 항해부터 인간의 후각과 광합성, 효소 반응에 이르기까지 삶의 일부 현상이 양자역학의 원리를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지고 있다. 복잡한 세포 환경에서도 양자의 미묘한 효과가 살아있다는 과학자들의 발견은 경이로움을 안겨주고 있다.
1. 양자후각이론: 열쇠 소리를 인식하는 자물쇠
사람은 어떻게 냄새를 맡을까? 고전적인 설명에 따르면, 후각 수용체 단백질(GPCR)이 냄새 분자의 모양이나 화학적 성질을 인식한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 과학자는 냄새를 맡는 과정에서 양자 진동이 관여한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후각 수용체는 분자의 모양 뿐 아니라 분자 내 원자들의 “소리”라고 볼 수 있는 진동 주파수까지 듣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수용체 안에서 전자가 냄새 분자를 가로질러 터널링(quantum tunneling)할 때, 분자의 진동 에너지에 영향을 받아 특정한 냄새의 신호를 알아낼 수 있다는 가설이다. 마치 열쇠의 모양이 아니라 열쇠가 진동하여 내는 소리까지 자물쇠가 구분한다는 것이다.
이 양자후각 이론은 1990년대 생물물리학자인 루카 투린에 의해서 처음 제기되고 지속적으로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몇몇의 실험 결과가 이를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였다. 대표적인 예시로 2013년 투린과 동료들의 연구에서 피험자들이 같은 분자인 머스크 향(사이클로펜타데카논)의 냄새를 맡더라도 수소 원자를 중수소로 바꾼 분자의 냄새를 맡았을 때 미묘하게 “탄 내” 또는 “구운 냄새”가 난다고 했다. 화학 구조는 거의 동일하지만, 분자의 진동수는 중수소로 치환하였을 때 달라지기 때문에, 이는 후각이 분자의 진동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고전적으로 모양을 인식한다는 이론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과에 당시 과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었다. 분자의 모양은 그대로이지만 냄새는 다르게 인식된다는 양자 후각 가설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물론, 이 가설에 반대하는 증거들도 있다. 2015년 에릭 블록 등의 연구진들은 인간의 머스크 향 수용체(OR5AN1)를 시험관 세포에서 발현시킨 뒤, 같은 머스크 분자의 정상형과 중수소 치환형을 각각 후각 노출하여 반응을 측정하였다. 그 결과, 수용체의 활성화 정도는 두 형태에서 거의 차이가 없었고, 이는 수용체 수준에서 진동수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투린은 이 실험 결과에 대해서 “시험관에서 진행한 실험 결과는 실제 인간의 코의 상황을 대변하지 못할 수 있다”라는 입장을 보였다. 양자후각 이론은 아직 논쟁 중이지만, ‘냄새를 맡는 데 양자역학이 한몫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발상 자체가 우리 후각의 비밀을 새롭게 조명하면서 과학적인 상상력과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2. 광합성의 비밀: 양자 중첩과 코히어런스
한편, 광합성은 양자생물학의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식물이 태양빛을 받아들여 화학에너지로 바꾸는 이 과정은, 에너지 효율이 거의 100%에 가까울 만큼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어떻게 자연은 이런 완벽에 가까운 에너지 전환을 이뤄내는 것일까? 그 비결들로 양자 중첩(superposition)과 양자 코히어런스(coherence) 현상이 지목되고 있다. 간단하게 다시 말해서, 광합성 안테나 색소인 엽록소 b에서 흡수된 빛 에너지가 한 경로로만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여러 경로를 파동처럼 탐색하며 가장 효율적인 길을 찾아가게 된다. 이는 양자역학에서만 가능한 에너지 전달 방식으로, 흔하게 양자워크(quantum walk)에 비유되곤 한다. 2007년 과학자들이 최초로 광합성 분자에서 양자 진동 비트(quantum beating) 신호를 포착했을 때, 과학계가 놀랐다. 실험은 2차원 초고속 분광법을 이용해 광합성 세균의 안테나 복합체를 조사한 것이었는데, 여기서 일관된 진동 패턴이 나타나 마치 엽록소 사이를 에너지가 얽힌 파동으로 오가는 듯한 증거를 보여주었다. 이후 연구들은 상온에 가까운 조건에서도 이러한 코히어런스가 어느 정도 유지될 수 있음을 보고했다. 과학자들은 이 양자 코히어런스가 에너지를 헛돌지 않고 거의 손실 없이 반응 중심으로 전달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2025년 독일 뮌헨 공과대 연구진은 엽록소 속 여러 전자적 여진 상태가 겹쳐진 양자 중첩 상태가 처음 수십 펨토초의 순간에 형성되어 에너지 이동을 돕는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들은 기존에 간과되었던 극미세 수명의 준안정 상태가 에너지 전달의 다리 역할을 하여, 엽록소의 두 에너지 준위 사이를 이어줌으로써 에너지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반응 중심으로 전달됨을 확인했다. “빛을 흡수한 후 엽록소 분자 내 여러 상태가 중첩되는 첫 단계 덕분에 거의 손실 없는 에너지 이송이 가능하다”는 연구자의 설명처럼, 양자역학이 광합성 초기 단계의 핵심 열쇠임이 드러난 것이다.
양자중첩과 코히어런스가 이런 식으로 에너지 효율을 높여준다는 가설은 매우 매력적이지만, 동시에 학계에서는 신중한 검증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부 연구는 양자 코히어런스가 존재하더라도 광합성 효율 자체에는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2021년 한 연구는 실제 광합성 복합체를 양자역학 모형과 비교한 결과, 양자효과가 효율을 극적으로 향상시키지는 않으며 오히려 환경에 의해 부분적으로 얽힘이 깨진 “절묘한 중간 상태”에서 최고의 효율이 나오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즉, 자연은 완전한 양자상태나 완전 고전상태가 아닌 절충 상태에서 작동하도록 조율되었을지 모른다고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논의 역시 양자 생물학의 깊은 매력을 보여준다. 분명한 것은, 식물의 한 잎사귀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직 인류가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 양자역학의 미스테리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3. 철새의 나침반: 양자 얽힘으로 방향을 잡다
매년 철새들은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경로를 정확히 따라 이동한다. 구름 낀 밤하늘이나 낯선 땅 위를 날아갈 때, 그들이 의지하는 보이지 않는 나침반은 지구 자기장이다. 그런데 지구 자기장은 매우 미약하여, 인간은 감지하지 못하고, 소형 나침반 바늘조차 겨우 움직일 정도이다. 놀랍게도, 철새들은 양자 얽힘이라는 양자역학적 현상을 통해 이 약한 자기장을 느낄 수 있다는 가설이 있다. 이를 “양자 나침반” 또는 “RADICAL 쌍 기작”이라고 부르는데, 새의 눈 속에 있는 크립토크롬(cryptochrome) 단백질이 핵심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크립토크롬은 빛, 특히나 청색광과 녹색광을 흡수하는 광수용체 단백질이다. 과학자들은 이 분자가 빛을 받으면 내부에서 두 개의 전자를 서로 다른 부분으로 보내 라디칼 쌍(radical pair)을 만든다고 설명한다. 라디칼 쌍은 각 분자에 짝짓지 않은 전자를 하나씩 가지는 쌍으로, 이 두 전자의 스핀 상태가 서로 얽힌 양자 얽힘 상태를 이루게 된다. 얽혀있는 동안 두 전자는 하나의 양자계처럼 행동하며, 각각의 스핀 방향 조합에 따라서 싱글렛 상태나 트립렛 상태로 오간다. 중요한 점은 지구 자기장의 방향에 따라서 이 두 전자의 스핀 전화 속도가 미묘하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평소엔 싱글렛과 트립렛 사이를 1:3 비율로 오가던 스핀 상태가, 특정 장소나 방향에서 지구의 자기장에 영향을 받으면 그 비율에 미세한 변화가 생겨 다른 스핀 상태를 유도한다. 이 작은 양자 수준의 변화가 크립토크롬 분자의 화학 반응 경로에 영향을 주고, 결국 새의 시각 신경에 어렴풋한 시각적 패턴이나 색 변화를 인지할 수 있다는 가설이 등장한다. 마치 새의 시야에 파랑-초록빛 “나침반”이 겹쳐 보이는 것처럼, 양자 효과가 시각과 연결되어 방향 감각을 형성한다는 시나리오이다.
흥미롭게도, 철새들의 자기 나침반은 빛이 있을 때만 작동한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유럽울새를 비롯한 새들은 청색 청록색 파장대의 빛 아래에서만 정확히 방향을 잡았고, 붉은색 광원이나 암흑 상태에서는 방향 감각을 잃는다는 사실이 1990년대 실험으로 인해 확인된 바 있다. 예컨대, 565nm 녹색빛까지는 잘 방향을 찾던 새들이 590nm 이상의 황색적색 빛에서는 완전히 방향을 상실하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이는 새들의 자기 센서가 청록색 계열 광자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뜻하고, 크립토크롬이 반응하는 빛의 범위와 일치한다. 또, 눈 한 쪽을 가린 새는 항법 능력이 떨어지고, 특정 전자기 펄스로 눈에 약한 교란을 주면 방향 감각이 교란되는 등의 실험들도 이루어져서, 이 가설은 힘을 받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점은 이렇게 양자 얽힘된 라디칼 쌍이 생체 내에서 유지되는 시간이다. 일반적으로 양자 얽힘은 따뜻하고 복잡한 환경에서는 순식간에 깨져버린다. 그럼에도 철새의 눈 속 크립토크롬에서는 얽힘 상태가 약 수 마이크로초 동안 지속되어 자기장 영향을 받기에 충분하다는 계산 결과가 있다. 겨우 백만분의 일 초 정도면 매우 짧게 느껴지지만, 양자 생물학적으로는 매우 긴 시간으로 볼 수 있다. 얽힘이 풀린 뒤에도 화학 반응의 결과물은 양자 상태의 기억을 간직하므로, 그 사이에 입력된 지구 자기장의 정보가 신호로 남게 된다. 최근 옥스퍼드대의 Peter Hore 연구진의 분석에 따르면, 오직 완전한 양자 얽힘 상태로 계산해야만 지구자기장 같은 미약한 자기장에 대한 충분한 민감도가 시뮬레이션되었다고 한다. 만약 전자들이 고전적인 상호작용만 했다면 그 영향은 지극히 미미하여 새들이 방향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새들의 나침반이 양자역학에 의존한다는 사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다른 양자생물학 가설들처럼 이도 아직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많은 과학자들은 이 이론에 더 무게를 싣고 있다. 양자얽힘이라는 신비한 현상이 철새들의 눈 속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은, 우리에게 자연의 경이로움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어쩌면, 지금도 비둘기와 제비들은 우리의 머리 위를 날면서 우리가 보지 못하는 양자 나침반의 청록색 빛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4. 효소의 마법: 양자 터널링이 만든 지름길
양자역학이 생물학적 세계에서 기여하는 또 다른 사례로는 우리 몸 속의 효소들의 작용을 들 수 있다. 효소는 화학 반응을 촉매하여 수백만 배 이상 빠르게 생체 내 반응이 일어나도록 도와주는 생화학의 주역인데, 그 엄청난 촉매력의 비밀 중 하나가 양자 터널링일 수 있다는 증거들이 쌓여왔다. 양자 터널링이란, 입자가 충분한 에너지 없이도 마치 담장을 유령처럼 통과하듯 에너지 장벽을 뚫고 반대편으로 바로 넘어가는 현상이다. 보통은 극저온의 물리 실험에서나 관측되던 이 터널링이, 체온 정도의 생체 환경에서도 효소의 도움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해질 수 있는 것일까? 효소는 반응물 분자를 정교하게 붙잡아 반응 활성화 에너지 장벽을 크게 낮추는데, 일부 경우에는 아예 장벽을 통과하도록 만든다고 한다. 예를 들어, 수소 원자나 전자를 옮기는 효소 반응에서, 과학자들은 정상 수소와 무거운 중수소를 썼을 때 반응 속도 차이가 단순 이론 예측과는 맞지 않는 특이한 현상을 발견했다. 이러한 큰 동위원소 효과는 고전적인 화학 반응으로는 설명이 어려웠고, 양자 터널링 모델을 도입해야 비로소 이해되었다. 미국 버클리대의 Judith Klinman 박사는 알코올 탈수소효소 등의 연구를 통해 효소 반응에서 양자 터널링이 일어남을 최초로 증명해 보였고, 이후 포르민트랜스퍼레이스 등의 효소들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확인되었다. 심지어 광합성에 필요한 엽록소 합성 효소에서도 빛에 의해 유도되는 양자 터널링이 관찰되었을 정도이다. 이제 생화학자들에게 “상당수 효소는 양자 터널링을 촉진함으로써 반응을 빠르게 한다”는 것이 정설에 가깝다.
한 과학 매체는 “양자 생물학이 추측에 불과한 영역도 있지만, 효소 촉매 작용에서 양자 터널링의 기여만큼은 확실히 입증된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는 양자생물학 사례들 중에서도 가장 확고한 증거로 여겨진다. 결국 효소들은 양자 세계의 힘을 빌려, 생명체에 필요한 화학 반응들이 시간 안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식사를 통해 얻은 영양소를 에너지를 바꾸고, 세포들이 분당 수백만 개씩 분자를 물질대사를 통해서 형성할 수 있는 이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양자 터널링이라는 지름길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온의 생물체 안에서 양자 터널링이 활발히 일어난다는 발견은 한때 불가능에 가까운 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생명의 화학에 양자가 스며들어 있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사례가 되었다.
양자생물학의 사례들은 공상과학 소설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차츰 실험과 증거로 뒷받침되면서 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냄새 한 모금, 한 줄기의 빛, 우리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철새, 그리고 우리 몸 속의 생화학 반응까지, 이 모든 일상적인 생명 현상에 양자 세계의 흔적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은 경이롭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여전히 많은 의문과 논쟁이 남아있다. 양자 역학이 실제로 얼마나 큰 기여를 하는지, 혹은 자연이 어떻게 이런 양자 효과들을 이용하도록 진화해왔는지 등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가득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새로운 양자생물학 가설이 제시될수록 인간의 호기심이 자극되어 다양한 연구들이 활발해지고 과학적인 신비가 우리를 매료시킨다. 홀데인의 말처럼 자연은 우리가 감히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기묘하고 멋진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김준서 학생 기자 | 화학생물 | 지식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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